말없이 보현행을 실천하는 우바새(남성불자지칭)도움 요청하는 곳 들이 많아 쉬지 않고 대기상태 보다 조계사(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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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건강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쁘다.
도움 요청하는 곳 들이 많아 쉬지 않고 대기상태 보다 조계사(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소재)사찰 경내를 돌면서 일을 처리해준다는 확실한 이창재씨는 충남 부여에서 2남6녀의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제 위로 형님이 태어나고 내리 6누나, 그리고 접니다.
그래서인지 형과 누나들의 돌봄을 통해 공부와 행동에 대한 예절과 생각하는 방법등을 배우며 자라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유학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식품쪽 사업과 장사를 하면서 재산을 모았고 만두공장을 차려 사업을 확정하려다 1995년 한국으로 귀국해 냉면, 국수 공장을 세우고 운영하다 접고 우연히 발을 딛게된 조계사에서 봉사를 5년간 해오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 10년차 직장인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창재씨는 봉사5년 그리고 정식직원으로 10년 사이 일어난 일을 담담히 전해준다.
‘처음에는 봉사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 마음도 치유되고 모든 일상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에게 부처님 가피가 있었는지 일이 순조롭게 시작됐어요. 뜻밖에도 사업쪽으로 길이 열리더니 미얀마와 연결되어 깨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얘기를 듣고 국내로 들여와 기름 공장을 세우고 서울중부시장에 점포와 사무실을 갖춘후 국내 유통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수산업에 대한 정보중에 우리나라에서 한치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되어 미얀마에 양식장을 만들어 황복어, 한치를 기르고 있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을 밝혔다.
그는 또한 노숙자들의 자립의욕과 거주지 확인을 만들어주어 노령연금도 탈수있게했고, 그들의 맏형이 되주기도하는 큰형이며 미얀마 고아원의 참사를보고난 후 손 닫는 몇군데 고아원을 지원하고있다고한다
오늘도 이창재씨는, 나를 찾아 부처님 말씀과 종소리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저녁에 마무리한다는 최고의 행복을 외치며 선한미소와 함께 경쾌하게 퇴근하는 뒷 모습에서 목탁소리도 들린다.